1. 유교적 전통 속에서 자라난 어린 시절
김문수는 195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정은 경주 김씨 문중의 종손 가문으로, 아버지는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보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김문수는 어려서부터 서당에 다니며 사서삼경을 배우는 등 유교적 가르침을 깊이 내면화한 채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보증 실패로 가세가 기울며 가족은 읍내의 판잣집으로 이사해야 했고, 이 경험은 그에게 체제에 대한 의문과 분노를 심어주었습니다.
2. 가난 속에서도 반짝이던 두뇌, 서울대 진학
중학교 진학조차 힘들던 형편이었지만,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김문수는 경북중, 이후 경북고에 진학합니다. 수양동우회에서 사회적 감수성을 키우며 고3 시절 박정희 삼선개헌 반대 시위에 앞장서 무기정학을 받았고, 대학 입시를 앞두고 정학이 풀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하게 됩니다.
3. 전태일의 죽음과 삶의 전환
대학 1학년이던 1970년, 전태일이 분신하며 남긴 메시지는 김문수의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유서와 함께 세상을 떠난 전태일의 죽음은, 김문수로 하여금 직접 노동 현장으로 들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4. 위장 취업과 노동자의 삶 체험
그는 서울대생 신분을 숨기고 구로공단의 미싱공장에 위장 취업합니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며 노동자들과 함께 숙식을 나눈 그는, 전태일이 그토록 읽고 싶어했던 근로기준법을 노동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이후 똑딱이 단추를 다는 도루코 공장으로 옮겨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펼칩니다.
5. 노조 결성과 노동운동의 전설
기술 자격증을 7년간 8개나 취득하며 철저히 준비한 그는, 한일도루코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위원장으로 선출됩니다. 파업을 통해 임금 30% 인상을 쟁취하고, 부당 해고된 조합원들을 복직시키는 등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심상정, 유시민 등 수많은 학생운동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위장 취업에 뛰어들었습니다.
6. 심상정·유시민과의 동지 관계
서울대 후배였던 심상정은 김문수를 따라 미싱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위장 취업을 감행합니다. 유시민과는 선후배 사이로, 그의 여동생 유시주는 선후연의 핵심 멤버가 되며 김문수와 함께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절, 그들은 단순한 조직원이 아닌 서로의 삶과 신념을 나누는 진정한 ‘동지’였습니다.
7. 남영동 고문실, 그리고 결혼
1980년, 그는 삼청교육대 정화 대상자로 수배되며 남영동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합니다. 그 시기 김문수를 숨겨준 이는 바로 훗날 아내가 되는 설란 여사였습니다. 경찰이 감시하는 가운데 열린 검소한 결혼식은, 그들 삶의 상징이자 저항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8. 민중당 창당과 제도권 진입 시도
김문수는 이상주의 정치의 실험으로 ‘민중당’을 창당하고, 1992년 총선과 대선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참패로 끝나며 민중당은 해산됩니다. 이 실패는 그에게 큰 상처였고, ‘민중이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회의가 그의 정치 노선을 흔들게 됩니다.
9. 소련 붕괴와 체제에 대한 회의
1991년 소련 붕괴는 진보진영 전반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김문수 역시 혁명적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잘사는 줄 알았던 소련이 그렇게 무너질 줄 몰랐다”며 현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그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고민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10. 민자당 입당과 진보 진영의 분노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한 그는, 과거 자신이 투쟁하던 상대 정당에 들어가게 됩니다. 심상정은 그의 선택에 “잊혀진 계절”이라며 냉소했고, 유시민 역시 더는 같은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입당 후 그는 “정권을 잡아야 개혁이 가능하다”며 전향을 정당화합니다.
11. 국회의원 시절과 경기도지사 재임
그는 이후 국회의원 3선, 경기도지사 2선을 역임하며 제도권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힙니다. 행정 능력과 정책 기획력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점차 박정희 찬양, 유신 옹호 등의 발언이 늘어나며 보수적 색채를 드러냅니다.
12. 박정희 찬양과 태극기 부대 합류
김문수는 SNS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 무덤에 꽃을 바친다”며 과거의 반유신 입장을 철회합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는 광화문에서 탄핵 반대를 외치며 태극기 세력과 함께 움직입니다. 정광훈 목사와 손을 잡으며 ‘극우 정치인’의 상징으로 불리게 됩니다.
13. 심상정·유시민과의 완전한 결별
한때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지였던 심상정과 유시민은, 이제 김문수를 완전히 결별한 인물로 바라봅니다. 유시민은 “김문수는 지금의 보수 정치인이 아니라, 과거의 전설로 남아야 했다”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14. 노동부 장관 지명과 논란
2024년, 윤석열 대통령은 김문수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합니다. 여권은 그의 노동계 경험을 높이 평가했지만, 야권과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천인공노할 인사”라는 표현까지 나왔으며, 김문수는 다시 한 번 이념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15. 전향인가 변절인가, 여전히 현재진행형
김문수의 인생은 여전히 해석의 여지가 많은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는 그를 ‘현실에 맞게 진화한 정치인’이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신념을 저버린 변절자’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의 여정은 한국 현대정치의 복잡성과 이념 갈등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입니다.